LTE가 아니라는 단점이 구입을 망설이게 하지만 스타일면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폰이다.
이 제품은 LG와 프라다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런경우 3가지 과정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LG에서 폰의 모든 디자인 및 개발을 한 후 브랜드로열티만 주고 프라다 로고만 붙인 경우,
두번째. 프라다의 디자인팀에서 디자인을 하고 LG에서는 디자인을 받아 제조만하는경우.
세번째. 프라다와 LG가 공동으로 프라다 개발 TFT로 꾸려서 같이 디자인하고 만드는 경우
위의 세가지 케이스 중 어떤 과정을 거쳐 프라다 폰이 개발되었는지는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니오는 LG나 프라다 관계자가 아니기에 어떤 형태의 과정을 거쳐 제품이 나왔는지 모르며 오직 결과물인 제품만을 놓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어디서 디자인 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는 상당히 핵심적인 문제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제조사 팍스콘 : 아이폰은 애플의 제품이지만 제조는 대만의 팍스콘에서 한다. 아이폰에 팍스콘의 DNA는 전혀 없다. 애플이 디자인한 대로 팍스콘은 제조할 뿐이다. 위의 두번째 케이스와 유사하다.
구글의 레퍼런스폰 갤럭시 넥서스와 삼성전자 : 갤럭시 넥서스는 구글의 레퍼런스 폰이며 삼성에서 제조한다. 이 폰에는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라는 삼성의 DNA가 있다. 스펙과 디자인에서 구글과 삼성이 같이 디자인했다는 것을 제품에서 알 수 있다. 작업방식은 위의 세번째 케이스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프라다3.0은 어디에 가까울까?
프라다 3.0의 제품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갤럭시 넥서스와 달리 LG 제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즉 두번째 방식으로 제조한 제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며 구글과 삼성의 관계보다는 애플과 팍스콘의 관계와 비슷하게 생각된다. 물론 실제로는 두번째나 세번째 방식으로 제조되었을 확률이 높을것이다.
프라다 3.0의 딜레마
프라다 3.0은 앞서 설명한대로 기존의 LG스마트폰들의 아이덴티티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관계를 하나 찾는다면 같은 LG공장에서 만들어 졌다는것 정도이다. 물론 프라다폰이 많이 팔린다면 LG전자의 매출은 늘어난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이 많이 팔리면 제조사인 팍스콘의 매출도 늘어난다.
이 프라다폰의 실제적인 오너쉽은 팍스콘과 달리 LG전자에 있을 것이다. LG전자는 프라다폰 한대당 6달러의 로열티를 프라다에 지불해야 한다는것을 보면 확실히 팍스콘과 애플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하지만 프라다폰 제품에서 느껴지는 아이덴티티의 위상은 LG전자나 팍스콘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프라다폰이 많이 팔릴 수록 프라다의 이미지가 높아지면서 프라다에 지불되는 로열티는 더욱 늘어나지만 그에 비례해서 LG전자의 디자인력이나 제품력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프라다가 많이 팔리는 만큼 오히려 LG전자가 자체적으로 만드는 폰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작업은 자체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가진 기업이 다른 기업의 디자인을 응용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이걸 가장 잘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시계 디자인 회사인 스와치이다. 스와치는 자체 디자인을 기반으로 여러 디자인들을 수용하지만 대부분 한정적인 Edition으로 진행하지 메인 제품으로 끌고가지는 않는다.
LG가 삼성 갤럭시처럼 자체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회사라면 Limited Edition 으로 명품 브랜드폰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것이지만 LG폰의 디자인력이나 기술력이 팬텍보다 낮다고 평가받는 시점에서 이런 시도는 LG전자의 경쟁력을 오히려 더 낮추는 일일 뿐이다.
LG전자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케팅 이슈로서 다른회사의 명품 브랜드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기술력과 디자인력을 내재화하고 LG브랜드가 붙은 플래그쉽 모델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애플 아이폰의 디자인을 삼성이 베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나오는 것 중 하나는 '스마트폰 디자인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 수 있겠느냐' 라는 반문이다. 이에 대해 애플과 삼성의 입장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애플은 자신의 독자적인 디자인이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니까 삼성을 고소한 것이고, 삼성은 스마트폰의 기능상 아이폰과 비슷한게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이들간 디자인 Copycat 논란의 하일라이트는 급기야 유명한 SF영화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영화안에 나오는 태블릿까지 끌고 나왔다. 영화에 나온 디자인이 애플의 아이패드와 같기 때문에 (갤럭시 탭이 아이패드를 베꼈다는 것이) 무효라는 주장까지 펼치게 된다. 그것도 법정에서. 한마디로 코메디이다.
기능이 유사하면 디자인도 비슷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삼성의 논리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충분히 먹힐만하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블랙베리의 존재이다. 블랙베리는 스마트폰이면서 애플의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폰들과 전혀 디자인이 닮지않았다. 삼성의 주장이 100% 맞다면 블랙베리는 존재 할 수 없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의 소송 중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아이패드와 갤럭시 탭을 놓고 어느 것이 삼성 갤럭시 탭인지 찾아보라는 판사의 요구에 삼성 측 변호사가 갤럭시 탭과 아이패드를 구별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디자인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삼성은 좀 더 애플과 차별되는 디자인을 추구해야한다, 삼성의 주장대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디자인이) 유사해 질 수는 있지만 포장박스 디자인이나 광고사진 까지 따라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 할 수 있을까?
창의력이 부족한 2류 디자이너들이 클라이언트들에게 자주하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거 ' 여기서 디자인을 어떻게 더 바꾸겠어요? ' 같은..
일류 디자이너와 이류 디자이너의 차이는 디자인 스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구분해 본다면 일류 디자이너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디자인에 부여하는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는 이류 디자이너이다. 그렇다고 별모양 휴대폰을 만드는 사람이 일류라는 뜻은 아니다. 디자인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이덴티티만 있는게 아니기에..
디자인은 취향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아이폰의 디자인이 싫은 사람도 있는 것이고 블랙베리 디자인에 광분하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블랙베리의 디자인을 선호하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사용자의 몫이다. 하지만 블랙베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제조사인 RIM이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발표한 블랙베리 9981은 이제까지의 블랙베리 시리즈와 확연히 다른 디자인을 보여주고있다.
금속성의 직선적이고 무게감있는 느낌. 이전의 블랙베리와 전혀 다른 디자인이지만 블랙베리의 신형임을 즉시 알 수 있다.
블랙베리 볼드 9900
위의 9981과 아래의 9900의 디자인을 비교해 보자, 블랙베리 마크를 제외하고 어느 한부분도 세부적으로 디자인이 같은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두폰이 같은 블랙베리라고 알수 있는것은 부분적인 디자인의 유사성이 아니라 전체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에 의해 인식 할 수 있다.
아이폰3G과 갤럭시S폰,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의 디자인 논란도 이와 같다. 애플은 삼성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베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삼성은 부분 부분의 디자인이 차이가 있기에 베낀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삼성 갤럭시와 아이폰을 나란히 놓고 디자인을 비교해 보면 디자인이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 차이는 블랙베리 9981과 9900의 차이보다 훨씬 적다.
삼성전자의 주장대로 애플 아이폰의 세부 디자인을 베낀것이 아니다.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베겼으니.
아래의 대만폰 역시 안드로이드이고 터치 기반의 스마트폰이다. 아이폰과 HTC를 비교해 보자. 블랙베리정도로 다르지는 않지만 아이폰과 비교할때 갤럭시 보다는 훨씬 디자인의 차별화를 이루고있다.
삼성. 이제 Fast follow 그만 할때도 되지 않았나
이 포스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삼성이 애플 아이폰 디자인을 베꼈는지 아닌지' 를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삼성이 자체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대표 스마트폰 디자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삼성이 휴대폰을 잘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다. 여기서 잘 만든다는 것은 기기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디자인이 아이폰 디자인과 비슷 할 수 밖에 없다는 타령을 하기에 이제는 삼성의 위상이 높다. 그런 타령은 중국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해야 어울린다.
이번에 나온 신형 블랙베리가 사람들의 디자인 취향에 안맞아 외면하거나 비싼 가격 ($2000) 에 의해 실패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블랙베리가 애플이나 안드로이드의 틈바구니속에서 이렇다할 에코시스템도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블랙베리가 가진 유니크한 아이덴티티 덕이 크다.
블랙베리에게 배우라는 뜻이 블랙베리 비슷하게 생긴 쿼티자판 제품을 생산하라는 것이 아니다. 죽이되던 밥이되던 아이폰도 블랙베리도 그 어떤 폰과도 닮지 않은 삼성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삼성 휴대폰이 이제는 나와 줘야 하는거 아닐까?
HTC나 SONY 스마트폰은 아이폰이랑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죠.
심지어, LG나 모토로라도 다른 제품이란걸 한눈에 알수있죠.
삼성건 뒤집어서 뒷면을 봐야만 차이가 느껴진달까요...
우리나라가 좀 디자인 개념이 부족한 건 알겠으나, 많이 창피해요.
아마 짝퉁가방도 상표만 안베꼈으면, 이미 있는 알파벳 몇자 혹은 패턴들 가방에 넣은거일뿐이고, 가방 모양이 거기서 거기지 어떻게 다르게 만드냐고 하겠죠...
보통의 스마트폰처럼이란? 보통의 아이폰 모양처럼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삼성이 보통의 삼성폰 처럼이라는 수식어를 가졌어야죠. 그리고 블랙베리가 아이폰만큼 히트를 쳤다면 삼성이 블랙베리와 같은 형태의 스마트폰을 분명히 따라 만들었을 것이고 윗분은 여기에도 보통의 스마트폰 처럼이라는 수식을 분명히 달아두겠죠. 바로 더 이상 디자인은 여기에서 변할 수 없다는 2류? (전 3류로 봅니다. 2류는 독창적이지만 대중성이 없는 디자인을 하는 경우겠죠. 따라쟁이는 3류입니다.) 디자이너의 변명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덧글알리미로 보니 눈두개 코하나 입하나 귀 두개면 똑같은 얼굴이겠네요 라고 덧글을 남겨주셨던데
지금 니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시자나요.
보통 귀두개 입하나 코하나 눈두개 있다고 다 같은 얼굴이라고 하나요? 안하자나요.
그런데 니오님은 사각형의 몸체에 전면 터치, 몇가지 아이콘이 비슷하다, 홈버튼위치가 비슷하다 이런걸로
똑같다고 하시고 계시구요.
그리고 다시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데
전면 터치스크린의 스마트폰은 거의 비슷할수밖에 없지 않나요?
다른 제품들 모양이 확인히 다르다 라는 덧글도 있는데 뭐가 다르단건지 모르겠네요.
전면 터치를 쓰는 제품은 다 비슷합니다. http://blog.ssu.ac.kr/attach/1/6417613266.jpg
확연히 다릅니까? 정말 완전 다른 디자인이다라고 말하실수 있나요?
a? 님 의견은 삼성이 아이폰 따라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하시니 그렇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a?님 댓글단대로 똑같이 생각하고 댓글에 그렇게 달아야 그게 의견을 듣는 건가요? 제 생각은 제 블로그에 쓰는거고 a? 님 주장은 a?님 블로그에 남기면 됩니다. 제 블로그 구독하라고 강요한적 없구요. 제 블로그는 답내는 블로그 아니니 답은 본인 블로그에서나 많이 내세요.
흠... 감정적인 대립은 각자의 주장을 펴는 경우에는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겠죠. 어디까지나 각자의 의견입니다만 법원에서 이 문제로 삼성이 승소하거나 패소하는 경우가 거의 반반입니다. 특허침해는 사실상 이리저리 피할 구석이 많이 생깁니다. 문제는 이런 특허 소송에 앞서 기술 문제도 아닌 디자인 문제로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하는 것은 분명 그 부분에 많은 문제가내포되어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제 개인 적으로는 겉 모양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내부 소프트웨어 디자인 형태가 거의 동일하게 구동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윗 분이 얼굴의 눈코입을 얘기하셨는데 얼굴 모양은 비슷해도 눈코입의 모양까지 비슷해서는 사람을 구별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삼성의 주장이 '스마트폰은 다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여서 그렇지 않은 스마트폰의 예를 블랙베리로 든거구요. 삼성도 자판을 넣어서 디자인하란 뜻이 아니라. 자판을 넣던 조이스틱을 달던 폴더형이던 그외 뭘 하던 독창적으로 디자인을 할때도 된거 아니냐는게 이 포스트의 주제입니다.
예가 조금 어긋나지 않았냐는 의미에서 댓글을 달아 보았습니다. ㅎ
차라리 본문중에 디자인이 달라보인다는 HTC의 핸드폰을 예로 드는게 더욱 나았을거다 보입니다..
애초에 해당 주장은 자판식이 아닌 터치식 핸드폰이 전제된 상태였다고 보는게.. 맞는것으로 생각되네요.
(아이폰과 삼성의 디자인 싸움의 시작이 정전식 패널 부터죠... 그리고 실제 전체적인 내용상 자판 방식은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였죠. )
구지 '스마트폰은 다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저 문구는... 기나긴 대화중 기자들이 뽑아낸 자극적인 한 문구... 정도라고 이해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 쓰고 보니 또 편드는것 같네 -_-; 암튼 삼성측 사람도 삼성제품도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탭은 하나 살까 고민중이지만...
LG에서 옵티머스Q가 나오는것은 알겠는데 삼성의 대표폰인 갤럭시 쿼티모델이 나오던가요? 블랙베리가 LG나 삼성을 따라하는 문제는 삼성이 독창적인 폰디자인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사인인거 같은데요. 포스트에도 썻지만 이 포스트는 삼성이 디자인을 베꼇는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포스트가 아닙니다. 사진은 참고를 위해 구글검색에서 찾아 올렸을 뿐이지 증명을 위해 올린게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포스트는 삼성이 애플을 베꼈으니 잘못했다라는 애플빠나 삼성까의 입장이 아니라 삼성 디자인이 독창성이 떨어져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고 삼성정도의 기술력이나 업계에서의 위상이라면 비슷한 디자인소리 안듣는 폰 디자인정도는 나와야 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LorD_Ken님이 댓글에 이야기 한대로 블랙베리가 안드로이드를 닮거나 또다른 회사들이 아이폰이나 삼성걸 베낀다고해서 그게 당연하다고 말하자면, 삼성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자위야 하겠지만 그런다고 삼성디자인의 경쟁력(독창성)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블로그는 개인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이게 무슨 타임즈나 월스트리트 저널도 아니고... 만약 그랬다면 감히 저딴식으로 댓글 달지도 못했겠지요. 댓글달았다가 밟힐게 뻔하니...
검은게 내 눈에는 희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고. 남들은 이렇게 보지만 나는 이런식으로 본다... 라고 쓸수도 있는게 개인 블로그 아닌가요? 이건 긍정적인 토론의 수준이 아니라 흠집이나 말꼬투리 잡아서 까대기 수준으로댓글만 다는 사람들 천지니... 도대체 한국은 인터넷 문화가 왜 이런 식으로 정착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 쓰면서 어떤 까대기 댓글이 달릴지 또 눈에 훤희 보입니다. 저런 쓰레기같은 댓글들까지 일일히 답변하시느라 수고많으십니다.
삼성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네요. 하긴 한국에 살면서 우리나라 위주의 광고와 우리나라 만세 위주의 뉴스를 접하게 되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봅니다. 이 블로그의 주요 요지는 독창성 있는 디자인을 삼성도 가져야되지 않나 하는 부분인데 이미 많은 분들이 독창성을 논하기 보다는 어쩔수 없는 디자인 형태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갤럭시폰 자체가 삼성이 주도한 것이 아닌 만큼 아이폰을 모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모방정신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와도 같구요. 삼성이 먼저 갤럭시폰을 만들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면 애플이 따라쟁이가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따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놓치고 세부적인 모양새가 다르니 우리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김밥에 보통 네모낳게 썰린 단무지 대신 새롭게 둥글게 썰린 단무지를 넣고 독창적인 김밥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게 없지 않을까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고아로 시작한 그의 삶은 가난했던 양부모 슬하에서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던것 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 충격을 받고 청소년시절을 방황하였습니다.
학비가 없어 6개월만에 대학을 중퇴한 후에는 기숙사 바닥에서 잠을 자고, 빈병을 주웠으며, 차비가 없어서 밥한끼를 얻어먹기 위해 7마일 (11.2KM)을 걸어다녔습니다. 절망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환경을 극복한 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 포스트의 뒷부분에는 2006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졸업생들에게 한 연설의 전문을 담았습니다.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스티브 잡스에게 니오 역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복잡한 가족관계와 어려웠던 어린시절을 돌아보았습니다.
만화 심슨가족은 미국 중산층의 생활을 풍자한 대표적인 만화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만화는 유명인을 만화에 출연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비틀즈 멤버들과 마이클 잭슨 처럼 유명한 가수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인 부시, 클린턴, 오바마가 출연했으며 유명 운동선수나 해리포터 작가인 조안 롤링 등 500여명이 넘는 유명인들이 만화에 나왔습니다. 그런면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유명인이 이 만화에 나오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빌 게이츠 역시 만화에 출연했습니다.
만화 심슨가족에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패러디한 만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만화에서 스티브 잡스는 마피아를 연상시키는 이름인 스티브 맙스로 애플 역시 철자를 약간 바꿔서 ‘매플’이라 나오고 사과를 양쪽으로 두 입 베어 물은 로고를 사용합니다.
스티브잡스를 풍자한 Steve Mobs
스티브 잡스와 만화 심슨가족은 스티브 잡스의 출연 말고도 꽤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원생 동거 커플인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2주일 후에, 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머니에 의해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라에 사는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됩니다.
스티브 잡스의 생모는 잡스의 여동생을 낳은 후 나중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결혼 할때 데리고 간 잡스의 여동생은 나중에 미국의 유명한 여류 수필가이자 소설가가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모나심슨(Mona Simpson)입니다. Simpson이라는 성은 그녀의 계부에게 받은 성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여동생 모나심슨. 잡스와 닮았네요.
현재 모나심슨은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문학가이자 대학교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청소년기 시절 잡스처럼 시리아계 혼혈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고 그에 대한 자전적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들 남매는 어른이 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성인이 되서야 만나게 됩니다. 모나 심슨은 TV작가이자 프로듀서인 리쳐드 어펠(Richard Appel)과 결혼하였는데 (현재는 이혼) 리쳐드 어펠은 만화영화 심슨가족(Simpsons)의 작가이자 프로듀서였습니다.
만화 심슨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원작만화가 맷 그로닝이 자신의 실제 가족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만화에서 바트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리사와 매기는 맷 그로닝의 실제 여동생 리사 그로닝와 매기 그로닝의 이름에서 따왔고 호머는 아버지 이름이자 아들의 이름인 호머 그로닝, 바트의 엄마인 마지는 맷 그로닝의 어머니인 마지 그로닝의 이름에서 빌려왔습니다.
만화에서 모나 심슨은 호머의 어머니로 나오는 캐릭터인데 심슨의 스토리 작가였던 어펠이 ‘mother simpson’ 이라는 에피소드를 쓰면서 자신의 아내였던 모나의 이름을 호머 심슨의 어머니 이름으로 붙입니다. 우연의 일치로 성도 똑같은 ‘Simpson’ 이다보니 꽤나 자연스럽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가족관계는 매우 복잡합니다. 잡스와 모나심슨의 생부인 압둘타파 잔달리는 시리아계 이민자였는데 잡스의 생모인 조앤 쉬블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하였으나 조앤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결혼을 못하게 되었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조앤은 혼자서 폴 & 클라라부부에게 스티브 잡스를 입양시킵니다. 잡스를 입양보낸지 몇 달 후 조앤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두사람은 대학원 졸업 후 결혼하여 2년후 스티브 잡스의 여동생인 모나를 낳습니다. 그리고 결혼 4년만에 이혼합니다. 이혼 후 잡스의 생모 조앤은 66년에 조지 심슨과 재혼하면서 딸 모나를 데려가고, 모나는 계부의 성을 받아 모나 심슨이 됩니다.
잡스가 애플의 CEO에서 물러난 후 뉴욕포스트에는 잡스의 생부인 잔달리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현재 네바다주의 한 카지노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잡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는 잡스에게 몇 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직접 통화하거나 만난 적은 없다고 합니다. 물론 이 메일에 대한 답장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잡스의 생물학적 부모. 끝내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내 아들의 멋진 인생에 한 부분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라면서 "설사 그가 지금처럼 성공한 기업의 대표가 아니라고 해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아들인 스티브 잡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키우지 못한 미안함 등이 묻어납니다.
스티브 잡스의 생모 조앤쉬블은 스티브 잡스를 입양보내는 가정의 양부모가 반드시 ‘대졸자’ 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비록 자신은 스티브 잡스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입양을 보내지만 스티브 잡스가 제대로 된 집안으로 입양되어 좋은 교육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폴&클라라 잡스부부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노동자였으나 스티브 잡스를 입양하기 위해 대졸자라고 학력을 속입니다. 나중에 이를 알고 잡스의 입양에 반대했지만 폴 & 클라라 잡스부부는 스티브 잡스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입양합니다. 그 약속이 지켜져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지만, 양부모가 그를 대학에 보낼 만큼 형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맙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양부모인 폴앤 클라라 부부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생모 역시 현재 생존해있습니다만 생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 자신의 양부모인 폴 & 클라라 잡스 부부를 절대 ‘양부모’라 부르지 않았고 ‘자신의 유일한 부모’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생부와의 인연이 박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과의 인연 역시 평탄치 않았습니다. 23세때 애인이었던 크리스 앤과의 사이에 ‘리사’ 라는 첫째 딸을 얻습니다만 그녀가 자신의 혈육이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애플의 성공으로 충분히 돈이 많았음에도 양육비도 주지 않아 크리스 앤은 극빈자 생활보조금에 의지해서 혼자 리사를 키웁니다.
결국 1980년 친자확인 소송에서 리사가 자신의 혈육임이 증명되어 양육비 지불에 동의 했지만 그는 딸을 만나기를 거부합니다. 낳자 마자 친부모에게 버려졌던 자신의 삶을 한탄하던 그가 자신의 딸 역시 똑같은 길을 걷게 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딸인 리사를 받아들여 이름도 ‘리사 잡스’로 개명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딸 리사 잡스. 하버드를 졸업하고 자신의 사업을 이끌고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입니다. 이연설을 보고 니오도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이라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얘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야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달 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내 부모(양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부모들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내 학비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위해 되돌려주면 5센트를 주는 콜라병을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걸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가다가 부딪힌 것들 중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이겠습니다.
내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겐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 났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에–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나는 내 삶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을 가졌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나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막 서른 살이 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글쎄, 애플이 커가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어떤 사람을 고용했고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나는 쫓겨났습니다. 성인으로서 내 삶의 초점이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나는 참혹함에 빠졌습니다. 첫 몇달동안 나는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앞서의 기업가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어떤 느낌, 지휘봉을, 내게 전해진 것처럼 그렇게 내려놓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로부터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이 그것을 조금도 바꾸진 않았습니다.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중 최고의 경우였습니다. 성공에 대한 부담은, 모든 것에 확신은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 내 처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린과 나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시험약이었지만, 환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 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나는 이런 비슷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여러날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는 것으로 이어질 때, 나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삶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약 1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침 7시30분에 스캔을 받았는데, 췌장에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췌장이라는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내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내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그것은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진단을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몇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는데,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임이 밝혀졌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 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지적 개념만으로 알고 있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 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음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러분이 탐험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의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혁신은 얼마나 많은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느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애플이 맥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IBM은 연구 개발비로 애플보다 최소 100배 이상의 돈을 투자했습니다. 혁신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혁신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에 따라서 얼마나 결과를 얻느냐에 달렸습니다.
1998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 그로 인해 인류는 자연으로 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불을 이용해 처음으로 문명을 만들어갔습니다. 현대의 문명은 PC라는 불로서 시작했습니다. PC는 인류의 생활을 모두 바꾸었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습니다.
그전까지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없었던 컴퓨터를 대중화 시킨 Apple I , GUI의 대명사 애플 매킨토시, 최초의 장편 디지털 영화 토이스토리, 음악의 혁명인 Itunes와 아이팟,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셀 수도 없습니다. 30년간 세상을 바꾸었고 우리의 생활을 창조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현신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님을 한번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애플이 발표한 부고소식에 마치 이전부터 잘 알고지내던 이웃어른이 돌아가신듯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 졌습니다.
정신적인 스승이었고 멘토였으며 나태해 질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과 영감을 주었고 리더쉽과 혁신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그가 바친 헌신은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를 추모합니다.
아래는 스티브 잡스 추모 포스팅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PC 이야기>
2011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PC한대가 21만 3600달러에 팔렸습니다. 한국 돈으로 무려 2억 4500만원. 성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가격이 2억 원이 넘을까요? 이 엄청난 가격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애플의 첫 번째 제품인 Apple I (애플원) 입니다. 요즘 나온 애플제품이라면 I를 ‘아이’라고 읽을 테지만 Apple I은 애플의 첫번째 PC라는 뜻으로 ‘애플 원’이라 읽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별로 공감은 안가네요
2012/01/18 06:44헬지 관련 분들은 공감이 안갈거 같네요.
2012/01/18 09:17헬지가 찐따라는 거
2012/01/19 11:51